‘꾸준히, 천천히’가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비결이에요

2021년 07월 02일

<미소 ; 짓다>는 미소 우수 고객님들의 삶을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미소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이 담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인터뷰 시리즈는 미소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주 3회 연재되며, 금요일에는 전문이 미소 공식 블로그에 게시됩니다.

“24살부터 28살까지 명함을 3~4개 정도 들고 다녔던 것 같아요. 직업이 4개였거든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역 근처 초량동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는 주희영입니다. 여기에서 8년 정도 부동산을 했고요, 전에는 김해에서 6년 정도 있었습니다. 공인중개사로 벌써 20년이나 일했지만, 20대 초반에는 컴퓨터 관련 일을 했어요.

컴퓨터 관련 일이라면, 개발자셨나요?

개발 언어를 다룰 줄 알았던 건 아니었고요, 회사에서 학교나 관공서에 전산망을 설치하면 제가 선생님들과 공무원들한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삼성CnC라는 회사가 첫 회사였거든요. 1990년대 초반에는 컴퓨터가 전부 도스(DOS) 기반이었어요. 프로그램 명령어를 검은색 도스 창에 직접 입력해 넣어야 했죠. 지금처럼 워드나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 게 아니라, 컴퓨터 자체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퇴사 이후에는 전 직장에서 만난 사수와 컴퓨터 관련 사업을 여러 개 했어요. 홈페이지 만드는 사업부터, 지금은 없어진 두루넷, 하나텔 같은 초고속 인터넷 회사의 대리점 일도 하고, 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컴퓨터 선생님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PC방도 했고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손댔죠. 24살부터 28살까지 명함을 3~4개 정도 들고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프로그래머처럼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었던 기술자는 아니었고요, 영업 일을 전담했죠. 홈페이지 제작사를 경영할 때도 프로그래머 두 분, 웹디자이너 두 분, 웹마스터 두 분을 두고 저는 영업에 집중했어요.

영업에 특화한 창업자인 셈인데,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어린 여자가 영업 일을 하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때는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 나이 들어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얼핏 보면 26~27살 때 사진하고 지금 모습이 큰 차이가 없어요. 무조건 정장과 구두를 신고, 30대 중후반처럼 보이려고 파마도 세게 했고요.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이고 사근사근한 축에는 못 껴서 무시당하지 않았던 것도 있는 거 같아요. 남자들이 저를 무서워할 정도로 세게 나갔거든요. ‘내 눈매가 무서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요 (웃음). 영업하면서 사람 상대하기엔 좋은 이미지죠. 그래도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건 엄청났어요.

나만의 영업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영업 노하우가 있다면 인맥을 잘 형성해 놓는 거예요. 해운대에서 PC방 할 때 사장님들 조합에 가입했어요. 지역 PC방 사장님들과 잘 알았고, 해운대 지부장을 맡아서 활동했죠. 사업을 접고 나서 조합 인맥이 크게 도움이 됐던 게, 제가 사장님들 대상으로 물류 일을 했거든요. PC방에서 파는 음료수나 과자, 라면 같은 제품 있잖아요. 이걸 차에 실어서 PC방 여러 곳에 납품하는 거죠. 이게 은근히 돈이 되더라고요. 차 하나에 500만 원어치 물건을 실으면 80만 원 정도가 남았어요.

그때도 무조건 정장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빈틈없는 깔끔한 이미지로 일했어요. 영업하는 사람은 무조건 깔끔해야 해요. 보라색 같은 이미지도 중요해요. 왜, 보라색이 요묘한 색깔이잖아요. 이야기할 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 뭔가 덜 꺼낸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좋죠. 오늘도 영업 노하우 얘기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웃음).

"영업하는 사람한테는 보라색 같은 이미지도 중요해요. 왜, 보라색이 요묘한 색깔이잖아요.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

사업이 잘됐다고 들었는데, 그만두신 이유는 뭘까요?

PC로 하는 사업들은 한계가 명확해 보였어요. IT 업계는 결국 얼마나 유능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느냐, 누구를 알고 있느냐의 인맥 싸움이에요. 여기서 대기업을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홈페이지 제작사는 LG나 KT 같은 대기업에서 관련 사업에 진출하면서 직격탄을 맞았죠.

사실 사업을 그만둘 당시에는 수입이 나쁘지 않았어요. 20대 후반, 그것도 여자가 작은 벤처 기업 몇 개를 경영하면서 500만 원 가까이 벌었으니까. 그런데, 한 번 투자할 때마다 1억 원씩 들어가는데, 그 투자금이 감당이 안 되는 거죠. IT 업계가 너무 빨리 바뀌어서 계속 관련 기술을 따라잡는 게 어려웠던 거예요. 그래서 계속 이쪽에서 일하다가는 남 뒷바라지만 하다가 끝나겠다 싶어서 얼른 접었죠.

"부산에서는 먼 친척을 ‘아재’라고 하는데, 아재 소개로 김해의 공인중개사에 들어갔어요."

부동산 관련 일로 직종을 옮기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먼 친척 추천 덕분이었어요. 8촌 이상인 친척 있잖아요? 부산에서는 그런 먼 친척을 ‘아재’라고 하는데, 아재 소개로 김해에 있는 공인중개사에 들어가게 된 거죠. 부동산 일을 처음 배울 때는 김해에서 상가랑 땅 분양을 했었어요. 장유라는 지역인데, 거기가 신도시로 처음 개발될 때였거든요. 개발 중이긴 했지만 거의 시골 동네였어요.

일거리는 참 많았는데, 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아서 5년 정도 만에 나오게 됐어요. 외지인이라고 토박이들이 소문을 만들어 낸 거죠. 젊었을 때였고, 미혼이었는데, 제가 여러 남자랑 어울려 다닌다고 뜬소문이 났어요. 억울했던 게, 주말마다 부산에 가서 놀았거든요. 그런데도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나고, 다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식으로 생각하더라고요. 결국 사람과 소문에 지쳐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죠.

"저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일을 멈추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전직하시고 초반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부동산은 큰돈을 움직이는 일이라 꼼꼼해야 해요. 큰 실수를 한 적은 없는데, 15년 전에 쳤던 사고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전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었거든요. 상담 실장으로 있었을 때였죠. 신축 아파트가 처음 입주할 때 사람이 동시에 몰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매물을 보러 온 고객님한테 아파트 비밀번호를 알려 드렸어요. 바쁘기도 했고 어차피 비어있는 집이라서요.

계약을 마무리하고 계약금까지 받았는데, 어느 날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비어있는 줄 알았던 집에서 전기랑 수도 요금이 나온다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깐, 계약한 고객이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아직 잔금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그분은 아주 당당했어요. ‘나는 계약금 냈고, 여기 살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 내보내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어요. 집주인 분한테도 굉장히 죄송한 일이었고요. 그 일을 계기로 남들보다 두 배는 꼼꼼하게 살펴봐요. 주변에서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할 정도로요. 부동산은 남의 돈 만지는 일이라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걸 초보 때 경험으로 배운 거죠.

점심시간에도 계속 전화를 받으신다면서요. 그럼 도대체 언제 쉬세요?

공인중개사로 일하면 쉬는 날이 거의 없어요. 주말에도 계속 문의 전화가 오고, 자정까지 전화를 받는 날도 많아요. 쉬는 날이 없는 거죠.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고객들이 부동산이 안 좋은 일에 휘말렸다고 오해를 해요. 신뢰에 타격이 갑니다. 전화 받다가 삶을 마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계속 열심히 일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일을 멈추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좋아하는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 중에 하나에요. 중개사는 계약이 꾸준히 들어와야 먹고 살 수 있잖아요. 항상 이번에 ‘계약이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일을 열심히 해야 다음 달 생활이 되고, 저와 함께 일하시는 소장님 월급도 드리는 거죠. 내가 열심히 일해야 한 명이라도 더 밥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계속 일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도 공인중개사 사무소 일은 제가 지금까지 하던 다른 일에 비하면 편해요. 찾아오시는 손님만 상대하면 되거든요. 중개사 일이 좋은 게 내일로 일을 미룰 수 있어요. 비슷한 평수와 가격대의 집은 많으니까, 오늘 꾀가 나면 내일 하면 되죠. 일을 한 번에 너무 많이 하려고 하면 지쳐요. 천천히, 꾸준히 가져가는 게 더 많이 할 수 있는 비결이에요.

"제가 말한 대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소름 돋을 때도 있죠.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요즘 더 많이 느껴요."

일하시면서 보람 있었던 순간, 언제일까요?

제 소개로 투자하신 분들이 꽤 많아요. 많은 분들이 투자하기 전에 잘 되면 명품 가방 사주겠다고 하세요. 그럼 제가 샤넬 가방이 백 개는 있어야 해요. 그런데 하나도 없어요 (웃음). 부동산으로 돈 버신 사장님들은 자기가 투자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제 덕분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세요. 감사하다고 사례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큰 건을 성사시켰을 때보다 어려운 사정의 고객에게 집을 찾아줬을 때 훨씬 보람이 있어요. 조심스레 적은 예산을 얘기하셨던 분께 최선의 집을 구해드리면 초코파이 같은 작은 선물을 받곤 하는데, 그게 참 감사해요. 이혼한 뒤 새출발하는 어머님께 집을 구해드린 적이 있어요. 아직도 그 거래가 기억에 남아요. 이전에는 잘 살았는데, 말 못 할 사정으로 집이 기울었던 거 같아요. 말투라든지, 입은 옷에서 티가 나는 게 있잖아요. 조용한 집을 구한다고 해서 구석진 낡은 주택의 세를 구해드렸죠.

그런데 이분이 4년 뒤 이사 나가면서 고맙다고 쪽지와 과자를 두고 가셨어요. 처음 자기 명의로 된 집을 장만해서 이사하셨거든요. 사실 그 집을 중개한 건 저한테는 간단한 일이었거든요. 그게 15년 넘게 부동산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고객에게 받은 선물이었어요. 저한테는 이런 게 샤넬 가방이죠.

일로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도 굉장히 기뻐요. 20년 가까이 공인중개사를 하다 보니 먼저 연락 오는 분이 계세요. 그런 분들은 제가 조언하는 대로 하시거든요. 제가 말한 대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소름 돋을 때도 있죠.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요즘 더 많이 느껴요.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돈은 어렵지 않게 벌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 관계는 그렇지 않죠."

중개사님만의 사업 철학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고객을 다 돈으로만 봤어요. ‘중개 서비스를 가장 잘 제공할 자신이 있으니까, 나와 계약을 하세요’라 말했어요. 단기적으로만 접근한 거죠. 들어오는 모든 계약을 성사시켜서 눈앞에 보이는 수수료를 가져가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요즘은 인맥과 신뢰를 쌓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보는 거죠.

‘10년 뒤에 저축한 돈을 모아서 저한테 오시면, 가지고 계신 자산을 안전하게 불릴 방법을 알려드리겠다’라고 말씀드려요.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돈은 어렵지 않게 벌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 관계는 그렇지 않죠. 제가 말을 잘못하거나, 실수하거나, 부도가 나면 돈을 바라보고 왔던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가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인간관계를 다지고 있습니다.

"저는 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육아는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미소 서비스를 어떻게 처음 사용하시게 됐나요?

전 직업이 3개였어요. 집에서는 가정부고, 사무실에 나오면 소장님이고, 그리고 아이 키우는 아줌마거든요. 미소를 처음 쓰게 된 건 육아 때문이에요. 저는 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육아는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제일 어려워요.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정말 모를 때가 많아요. 아이가 필요한 내용을 다 설명해 줬는데 “엄마, 이건 또 왜 그런 거야?”라고 물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죠. 그래서 청소 스트레스라도 덜어 보고자 미소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미소를 쓰기 전에는 친정엄마한테 용돈을 드리면서 집안일을 부탁했어요. 전 되게 깔끔한 청소를 원하거든요. 그런데 두 분이 나이가 드시니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고, 추가로 부탁은 못 하겠더라고요. 자연히 고민하던 중에 친한 이웃이 미소를 추천해줬어요.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가 가사도우미를 부를 정도로 잘 살지는 못하는데?”였어요.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는 벌어야 사용할 수 있는 고급 서비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처음 추천받아서 이용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저렴했어요. 클리너분과 대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요. 앱에서 스케줄도 짜 주고, 서비스를 원하는 시간에 바꿀 수도 있어서 깜짝 놀랐죠. 이렇게 손쉽게 고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니! 그래서 저는 지금 널리 알리고 있어요.

"미소를 쓰고 여유를 찾았어요. 청소가 내 일이 아니게 되니까 더러운 게 조금 보여도 꼭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미소 서비스를 사용하시고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클리닝 서비스가 사치이긴 하죠. 우리집을 치우는 건 저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꾸준히 미소를 쓰는 이유는 저는 그 시간에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잘하는 일에 시간을 더 투자에서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주시는 미소 클리너분들이 정말 감사해요.

미소를 쓰고 여유도 찾았어요. 그전에는 피곤해서 집안일을 할 엄두가 안 날 때도 식탁에 앉아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어요. 한 시간 넋 놓고 앉아 있으면서 머릿속에서 어떻게 치울지 시뮬레이션을 했거든요. 그건 쉬는 게 아니죠. 스트레스는 더 받으니까요. 실제로 맘먹고 청소할 때도 대충 못 했어요. 청소를 대충하면 먼지가 다 보이는데 그걸 참을 수가 없었죠. (웃음) 그래서 새벽 3시까지 청소를 하고 자고 그랬어요. 내일 되면 어차피 또 해야 하는데, 그래도 지금 먼지가 보이는 게 너무 싫었던 거죠.

그런데 청소가 내 일이 아니게 되니깐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게 됐어요. 어차피 수요일에 클리너분이 오셔서 치우시니까 더러운 게 조금 보여도 꼭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마음의 여유를 찾았어요. 성격도 조금 바뀌었죠. 밖에서도 미친듯이 일하고, 집에 와서도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닦던 사람이었는데, 덕분에 완전히 내려놨습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일요일에 쉬어요. 더는 쉬는 날 청소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키즈카페에 가서 시간 보내다가 아이와 함께 맛집 찾아다니고, 둘이 꽃 하나 사면서 즐거워하고, 그런 일상이 생겼죠.

요즘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일 다 끝내고 들어와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요.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가족들이 마루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 생각과 걱정 없이 쉴 때요. 이런 게 여유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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